자소서의 대표적 클리쉐 '화목한 가정', 그러나 탁 까놓고 그런 집이 어디 있으랴. 몇 개의 삶이 모여 다양한 풍파를 겪으며 가족은 더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비정상적이지만 더없이 평범한, 그래서 노멀해지고픈 가족이 여기 있다.

 

 

화목한 가정? 뻥치고 있네

커다란 전지에 가족사진을 붙이고 소개를 늘어놓는 과제물은 매 학년의 필수 커리큘럼 같은 것이었는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사진을 고르고 붙이는 수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과제를 걷어 벽에 전시해두면 반 전체가 꼭, '근엄하고 자애로운 부모님 아래 화목한 가정' 이란 슬로가 아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가족사를 들어보면 어느 집에는 독재자 아버지가 있고, 어느 집에는 치맛바람을 몰고 다니는 오지랍퍼 엄마가 있다. 어느 집에는 조상마저 포기한 자식새끼가 있지만 가족소개엔 늘 듬직한 첫째와 귀여운 막내로 포장된다.

 

이게 리얼이야!

평번한 가정에 대한 이론은 어느 정도 알 것 같은데 무엇이 리얼리티인지 알 수 없다면 여기, 겉보기에는 여느 평범한 집들과 다름 없는 굿맨 가의 집구석을 들여다보자. 자상한 아버지? 일단 오케이. 그 다음 엄마, 그런데 이 엄마가 좀 심상치 않다. 아들이 죽은 후 부터 16년 동안 쭉 미쳐서 아들이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오로지 엄마 다이애나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아들내미만 아니었더라면 켄터키 옛날 시골집처럼 평온했을 집안에, 자꾸만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감돈다. 이런 아내를 잡아주려 애쓰는 남편 댄과, 이런 엄마가 자신을 망쳤다고 원망하는 딸 나탈리의 상처도 갈수록 깊어진다. 그래도 가족이라 버리지도 도망가지도 못한 채 어떻게든 부여잡으며 살고 있지만 이 가족, 도저히 합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그래도 가족이니까' 식의 명분으로 울고불고 화해하고 하하하 웃는 떼샷 구조로 해피엔딩을 맞이하겠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던가.

 

그래도, 해피엔딩

사람들은 모두 힘든 시기를 겪는다. 어떤 사람들은 감기처럼 가볍게 넘기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종양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세상 모든 드라마는 시련에 할퀴고 찢긴 주인공들에게 일률 단편적인 해피엔딩을 요구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각자의 상처는 자신의 방식대로 이겨내는 것이다. 그래도 모두 각자의 삶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니, 이 정도면 해피하지 아니한가.

 

 

*이 글은 디지털 매거진 <필링펀치> 1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신고

'미친감수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에 대한 진짜 날 것,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0) 2013.12.31
Wegains  (0) 2013.02.15
스무살, 이후  (2) 2012.12.30
Posted by 앎 petaldrops

1. 친하지도 않고 딱 한 두번쯤 만났던 그와 술을 마셨다. 현실에서는 없는 사람이었지만 꿈 속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꿈 속의 나는 뭐하는 애였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지금처럼 백수 나부랭이는 아니었나 보다. 그는 현실의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어서, 나름 꿈에선 멀쩡하게 사회생활하는 나를 연신 부러워했다.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소주병을 부여잡으며 신세한탄을 하던 그가 갑자기 술에 취해 휙 쓰러져 버렸다. 차라리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았으면 좋으련만 바닥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분명 그가 취해 쓰러지기 전 까지는 포장마차 안이었는데 그의 실신과 함께 순식간에 어딘지도 모르는 공사현장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어쨌든 다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119를 눌렀다. 여기 술 마시던 사람이 쓰러졌어요. 어딘지는 잘 모르겠는데 위치추적이라도 해서 제발 좀 와주세요.

 

 

2. 119에 전화를 했건만 딸랑 병원 앰뷸런스만 왔다. 의사도 아니고 뭣도 아닌 남자들이 의식을 잃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질질질 끌고 앰뷸런스차량 쪽으로 걸었다.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에 얼굴이 쓸리며 여기저기 피투성이가 된 그가 갑자기 의식을 되찾고 몸을 바둥거리더니 도망쳤다. 남자들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혼자가 된 나는 무서워졌다. 울고 있는데 어느새 그의 집앞이었다. 앰뷸런스 남자들도 어느새 그의 집앞이었고 그는 바둥거리면서 또 질질질 끌려갔다. 그의 엄마가 현관에서 안된다고 울부짖자 남자 몇명이 더 나와 그의 엄마를 제지했다. 계단에서도 그냥 질질질, 마당에서도 질질질, 대문에 철로 된 턱도 있었지만 앰뷸런스 남자들은 자비가 없었다. 철로 된 대문턱에 그의 턱이 한번 걸리며 피를 냈고, 그는 다시 질질질 끌려서 앰뷸런스에 탑승? 아니, 압송되었다. 곧 실신한 그의 어머니도 그처럼 똑같이 질질질 끌려 피투성이가 된체 앰뷸런스 안에 실렸다.

 

 

3. 울고있던 사이 남자친구가 등장했다. 왜 우냐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정황을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곳을 벗어나야 했으니까. 그래도 혼자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 혼자였으면 아마 나도 실실해 버리고 그와 같이 끌려갈지도 몰랐을 테니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 치다 이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해졌다.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달리고 달리고, 숨이 차오르고 더 이상 뛸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을 때(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의외로 정말 잘 걷고, 정말 잘 뛴다.), 구닥다리 5층짜리 건물 하나가 보였다. 왠지 그 곳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남자친구) 손을 꼭 잡고 현관문을 열었다.

 

 

4. 어두컴컴한 계단을 3층 쯤 올라왔나? 실신한 그가 또 계단 바닥을 쓸으며 끌려 내려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서 저항해봤자 나도 저렇게 될 것만 같았다. 아래로 내려가야 다시 그 무시무시한 앰뷸런스밖에 더 보겠냐는 생각에 다시 위로 올라갔다. 또 실신한 그가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공포감에 눈물도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엔 수십명의 그가 폐타이어 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어떤 그들은 팔다리를 흐느적 대며 남자들에게 저항을 하기 시작했고, 한 명씩 한 명씩 똑같이 생긴 그들이 바닥을 쓸며 질질질, 질질질, 질질질... 공포감에 울어대다 잠에서 깼다.

 

 

5. 새벽 3시 반 쯤이었다.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아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 곤히 자는 동생을 보다 또 잠들었나보다.

 

 

6. 앰뷸런스 남자들의 다음 타격은 우리 가족이었나 보다. 남자친구는 온데간데 없고 나는 갑자기 으리으리해진 우리집에 있었고 내 동생은 셋으로 늘어났다. 밖에선 총소리가 들렸다.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뚫고 들어오는 총알같은 건 없었으니, 지금 우리집과는 다르게 꽤 좋은 집이었다.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식탁의자 밑에 숨었다. 거실은 상들리에도 있고, 투명한 유리창이 있으니 그리 안전하지 않았으니까(그런 집에서 좀 살아보고 싶다. ㅅㅂ). 오들오들 떨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회의를 하다가 앰뷸런스 남자들과 부모님의 원한관계에 대해 듣게 됐다. 그들은 어쨌든 온가족을 무자비하게 몰살시킬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

 

 

7. 총성이 멈췄다. 그들이 우리가 모두 총에 맞아 죽었다고 판단한건지, 총알이 다 떨어진 건지 우리집을 떠나고 있었다. 그 때 아빠가 갑자기 총 하나를 쥐어주며 홍콩에 갔다오란다. 아... 나 해외에 한 번도 안나가 봤는데. 꿈인지도 몰랐고, 왜 그 급박한 상황에서 나이스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공항에 아마 그들이 있을 거란다. 그 총으로 그 놈들을 따돌리고 홍콩행 비행기를 타라고 한다. 지금 출발해야 한다. 그들의 눈을 피해 차를 타고 공항에 가야 하는데, 난생 처음 홍콩에 가보고 싶긴 한데 난 영어도 안되고 발이 안 떨어진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머릿 속이 하얗게 질린다.

 

 

8. 오빠한테 카톡왔다. '우리 돌돌이 아직도 자니?' 열한시다. 아... 나 요가 못 갔어. ㅠㅠ

 

 

 

 

 

신고

'emotional usel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7일 목요일의 꿈 기록  (0) 2013.11.07
나이  (1) 2013.08.26
참을 수 없는 어떤 분노에 대하여  (0) 2013.06.26
대화  (0) 2013.06.04
2  (0) 2013.05.25
생각무덤  (0) 2012.01.16
Posted by 앎 petaldrops

2013.08.26 03:05 emotional useless

나이

지금 시기가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인것도 맞고, 마냥 귀여움만 받던 스물넷, 다섯, 여섯과는 조금 다른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찌됐거나 난 스물일곱이라는 내 나이가 참 좋다. 스물다섯 무렵부터 나는, 내 나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감이 잘 오지 않는 스물여덟, 아홉, 서른도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순수하고 철 없이 살 생각이다.

신고

'emotional useles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월 7일 목요일의 꿈 기록  (0) 2013.11.07
나이  (1) 2013.08.26
참을 수 없는 어떤 분노에 대하여  (0) 2013.06.26
대화  (0) 2013.06.04
2  (0) 2013.05.25
생각무덤  (0) 2012.01.16
Posted by 앎 petaldrops

블로그 이미지
petaldrops

공지사항

Yesterday0
Today0
Total11,623

달력

 « |  » 2017.0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


티스토리 툴바